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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영 KSoP 부회장] [사유와 성찰] '심리적 거리 두기'의 윤리




거리 두기와 거리가 먼 문화 타인의 심리 공간 침해 많아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문가들 민감한 거리 두기 윤리성 필요 침해가 있는지 항시 성찰해야


지금 지구촌은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에 한창이다. 본시 방역 용어이지만, 내게는 우리의 윤리의식을 돌아보게 하는 단어다. 우리 문화는 ‘거리 두기’와 거리가 멀다. 워낙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여서인지 늘 부대끼며 살아왔다. 콩나물교실, 만원버스가 자연스레 용인되는 문화였다.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어색하기만 한 문화로 인해 우리는 쉽게 타인의 심리적 공간을 침해하곤 했다. 만원버스 성추행은 사춘기 남학생들이 한번쯤 해볼 수 있는 장난처럼 치부되기도 했다.

생활 속 물리적인 ‘거리 두기’를 제대로 못 배운 우리는 타인의 심리적 공간과의 ‘거리 두기’도 서툴기 마련이다. 다 큰 자녀의 방문을 노크 없이 들어가는 부모는 보호자 권리를 주장한다. 가정뿐 아니다. 힘의 편차가 존재하는 대다수 조직에서 심리적 거리 두기는 먼 나라 이야기다. 학교나 병원에서도 학생과 환자의 심리적 공간이 쉽게 침해받을 수 있다. 교사나 의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성적과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심리적 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전문직 윤리는 이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상대하는 무수한 전문가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되었다. 피해자들은 이미 자신의 심리적 공간이 무너진 상태에서 전문가를 만난다. 설상가상으로 윤리의식이 결여된 전문가들은 또다시 피해자의 심리적 공간을 침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2차 피해 방지, 즉 취약한 심리적 공간과의 ‘거리 두기’를 위해 심리지원 전문가를 배석시키곤 한다.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심리지원 전문가들도 조금만 민감성이 떨어지면 여지없이 피해자의 심리적 공간을 침해하고 만다. 그래서 트라우마 심리치료와 상담은 고도의 전문성뿐 아니라 높은 윤리성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자신의 전문성 안에 윤리적 치부를 교묘히 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성폭력 피해에서 벗어나도록 돕겠다면서 여성 피해자의 성기를 스스로 그리라고 시킨 요상한 상담사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자신의 행위가 다 고객을 위한 전문적인 대처였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그러면 처벌할 방법도 모호해진다.

그간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을 위해 법률 및 정신의학 분야 등 여러 전문가들이 헌신해왔다. 그들의 전문성은 다를지라도 모두 높은 윤리의식이 필요하리라. 단 한순간이라도 피해자의 유익이 아닌 나 자신의 필요를 위해 진행한 행위가 있다면 그건 분명 전문직 윤리에서 말하는 ‘경계 침해’(boundary violation)에 해당한다. 세상에선 전문가의 경계 침해를 죽을죄처럼 여기진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를 위한 전문가라면 이를 전문직을 그만둘 만한 중죄로 여겨야 한다. 이런 침해는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피해자 인권운동가 역시 전문직 윤리의 예외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면밀히 돌아볼 수 있는 운동가 자신의 성찰능력이다. 피해자 인권회복을 위한 행위가 잠시라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데 활용됐다면, 그 침해사실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진지한 윤리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인권운동가 윤미향씨는 그가 이사장으로 이끌던 정의기억연대가 정기적 피해자 생활비 지원이 아니라 피해자 대외활동지원 및 다양한 교육·홍보·추모 사업을 목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의기억연대의 총지출 대비 피해자 지원사업 비율은 고작 5~8%였다. 이 수치를 보면 윤 전 이사장이 자신의 개인 계좌로 받은 기금을 ‘모두’ 사업목적에 맞게 사용했다는 발언은 과연 취약한 피해자들의 심리적 공간을 침해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필요’만을 위해 쓰였는지 깊이 성찰한 후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내겐 인권 운동가로서 윤리적인 성찰능력이 결여된 발언처럼 들렸다. 그가 국회의원으로서는 전시 성폭력 피해 할머니들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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