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누구나 알고 있는 필란트로피스트이다. 척 피니는 빌 게이츠가 자신의 필란트로피 모델이라고 밝혔을 만큼 유명한 필란트로피스트이자 사업가이지만 국내에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빌 게이츠와 척 피니는 필란트로피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에 있어서는 많이 다르다.
척 피니는 1950년대 면세사업이 시작되는 초기에 이 분야에 뛰어들어 큰 자산을 일구었다. 1996년 동업자와 사업체 매각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면서 과거에 5천만불을 아틀란틱 필란트로피즈 재단에 기부했다는 사실이 뉴욕타임즈를 통해 알려졌고 지금까지 80억불을 기부했다다. 그 전에는 지독한 사업가, 짠돌이로만 알려졌는데 그의 비밀스러운 기부가 알려지면서 필란트로피의 제임스 본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다는 말로 그의 근검한 생활방식과 기부정신을 표현했다. 75세까지 이코노미석만 타고 비닐봉지에 읽을 책을 담아 다녔으며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의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한 편, 빌 게이츠는 어떨까? 기부이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2천여 평의 저택에 살고 있고 수영장에는 수중에서 들을 수 있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근검절약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그의 재산 규모에 비하면 근검절약일 수도...).
두 사람의 필란트로피 철학에도 차이가 있다. 척 피니는 기부를 비밀로 하고 드러내지 않았다. 빌 게이츠는 기부를 숨기지 않았고, 자산가들이 생전 또는 사후에 자산의 50% 이상을 기부하는 데 참여하도록 기빙 플레지라는 기부 운동을 벌여왔다. 지미 팰런 쇼에 나와 오수를 재활용한 물을 마시는 장면을 공개함으로써 아프리카 물 개선에 대한 이슈를 대중에게 환기시켰고, 로저 페더러와 자선 테니스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필란트로피 정신을 확산하는 데 본인의 능력과 기회를 활용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척 피니 중 누가 옳은가? 여러분은 빌 게이츠와 척 피니 중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가? 기부라고 하면 흔히 평생 검소하게 살다가 전 재산을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 같은 사례를 모범적인 기부로 생각한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몰라야 한다며 자산가의 기부공개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는 기부자의 생활방식이나 기부공개에 따라 착한 기부를 판단하는 편견이 있다. 우리가 기부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이러한 잣대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한국에서도 또 다른 빌 게이츠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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